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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록

새벽 글쓰기

by ♡▤▩≠∱∄ 2023. 12. 7.

간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분명 9시 반에 누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10시에 불을 껐는데..

마치 잠들지 못한 채 잠시 눈만 감고 있다 뜬것 마냥 눈을 뜨니 시계는 이미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잔 건데 안 잤다 생각한 건지 아님 이 시간까지 진짜 잠 못 들고 있었던 건지..'

자다 깼음 비몽사몽한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정신이 멀쩡하고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팠다.
잠을 못자고 있었다 생각이 드니 짜증이 밀려왔다.

오늘만큼은 꼭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싶었다.
.
.
.

매일 하루의 기록을 남기는 것은 내 삶의 작은 성취이자 기쁨이다.

겉으론 늘 똑같이 반복되는 주부 일상인 듯 하지만
사실은.. 매 순간의 내 행동과 판단, 내 닿는 손길과 걸음마다 주어지는 공기가 다르고...
그 환경마다 전해지는 특별한  느낌과 생각을  오롯이 담아두고 의미를 되새기며 하루하루 마음이 성장하는 날들을 살고 싶다.

아이들이 모두 등교를 하고 나면 나는  20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에 간다.
첫째 하교 시간 전까지 나에게 주어진 4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으로 쓰고 싶은데 집에 있으면 집안일들이 눈에 밟혀  내 시간에 집중할 수가 없다.

그렇게 도서관에 가면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이 나의 루틴이다.

그런데 근처에 사시는 엄마는 내가 오전에 집에서 집안일을 하지 않고 도서관 가는 것이 늘 불만이셨다.

오전에 나에게 전화를 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거나 5분 거리 친정에 좀 오길 바라시는데 내가 도서관 가야 한다면 목소리에 이미 짜증이 묻어계신다.

"집안일은 하고 밖에 나 다니는거니?"

집에 오라는 엄마에게 내가 오후에 들르겠다면..
"뭘 그렇게 기를 쓰고 가는 거니? 엄마가 좀 오라고 하면 올 수도 있지"

한 번씩 내가 집에서 무슨 음식을 만들었다거나 시시콜콜 집에서 한 청소나 집안일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들을 꺼내 놓을 때면 이때다 싶으신지...
"여자는 그렇게 살림하며 사는 거다"
하신다.

주부인 내가 아이들 건강하게 음식 해먹이고
집안 관리 청결하게 잘하고...
그 일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내 하루에는 나만의 계획이 있고 우선순위가 있다.

무슨 집안일을 하루 몇 시간씩 매일 할 것도 아니고 오후에 얼마든지 해도 되는 일이다.

제일 머리가 맑고 상쾌한 오전 시간엔
'긴급하진 않지만 중요한' 나만의 우선순위 매트릭스에 따라 하루를 계획적으로 보내고 싶고 그 시간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
그래봤자 9시 반부터 오후 1시 반까지 하루 딱 4시간이다.

1시 반에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첫째 하교 전까지 저녁준비를 하고 첫째 학원 간 시간에 집안일을 해도 된다.

엄마가 나에게 볼일이 있으니 친정에 오라시면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인 친정에 오후에 가도 될 일이다.

그걸 왜 엄마는 꼭 오전시간에 그렇게 나를 찾고 오전시간에 나에게 집안일을 하라고 눈치를 주시고 잔소리를 하시는 걸까...

그렇다 하더라도 물러설 나는 아니다.
엄마가 잔소리를 해도 "응 그래 알겠어~ 다했어 다하고 나가" 하고 둘러대고 그냥 난 내 갈길을 간다.

한 번씩 도서관에 있을 때 전화가 오면
그냥 내 할 일 다 하고 나중에 전화를 드리기도 하고..
도서관이라 말하기 너무 눈치가 보이면
그냥 밖이라고 둘러대며 그렇게 내 방식대로
내 삶을 꾸려나간다.

그런데 문제는 엄마가 얼마 전 뇌동맥류 수술을 하셨다.

수술은 잘 되셨지만 수술 후유증으로 두통이 좀 있으시고 전신마취  탓인지 아직까지 기운도 입맛도 영 없으시고 속도 좋지 못한 그런 상황이시다.

그러다 보니 끼니때마다 그때그때 뭔가 먹고 싶은 게 있음 아버지랑 나가서 사드시고 계신다.

그런데 그렇게 점심을 사드시려고 걷다 보면
바로 옆 아파트인 우리 집까지 오게 되시고
그러면 전화를 하신다. 같이 점심을 먹자고..

어제도 오전에 학교 부모회 모임을 마치고 부랴부랴 도서관에 가려고 해반천으로 내려가 걷기 시작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랑 오리고기 먹으러 갈 건데 혹시 어디니? 엄마 너희 집 앞이고 해반천 걸어서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

때마침 나도 해반천에 막 내려와 있었기에 엄마를 안 볼 수가 없었다.

어제 학부모 모임이 늦게 마쳐 얼른 도서관에 가서 글을 쓰고 밀린 책을 빨리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 서둘러 가고 있었는데 내 발길이 그대로 딱 얼어버렸다.

평소 같았음 도서관 가야 한다고 그냥 엄마랑 아버지랑 점심 드시고 오시라 이야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엄마가 몸이 안 좋으니 마음도 많이 약해지신 상태이고 아버지가 옆에 계시지만 또 딸이랑 함께 하고 싶은 일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랑 1시간가량 해반천 따라 산책 겸 식당에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하고 이쁜 손주들 우스운 이야기도 들려주니 두통을 잠시 잊은 듯 호탕한 엄마의 웃음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돌아올 때는 경전철을 타고 왔고 친정보다 한 정거장 앞에서 내려야 하는 나는 내릴 때가 되어 문 앞에 서있는데 들려오는 엄마 목소리..
"오늘 시간 내줘서 고맙다~"

그 얘기를 들으니 그동안 엄마 눈에 비친 딸이 얼마나 바쁘게 느껴졌나 싶기도 했다.

엄마는 내가 살림을 안 하는 것 같아 불만이기도 하셨겠지만 그것보다 더 큰 진심은 엄마가 바로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는 게 더 답답하고 짜증이 나셨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 마음도 십분 이해가 되었고
적어도  엄마 몸이 회복될 때까진 내 시간에 대한 갈망은 잠시 내려놓고
엄마가 날 찾으실 땐 최대한 옆에 있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학교 유치원을 보내고 주어지는 나의 오전 자유시간의 유무가 불확실해졌다.
엄마가 연락하면 언제든 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책은  언제든 짬짬이 읽을 수 있지만 시간이 확보되어야 하는 글쓰기는 그렇지 않기에
불확실한 오전시간을 피해 새벽에 쓰기로 루틴시간을 다시 재조정해보았다.

하지만 난관이 있었다.
새벽기상은 지난 3년간 꾸준히 해오던 일인데
지난 6월 일을 그만둔 이후로 어느 순간 쉽게 밤에 잠들지 못했다.

불면증으로 늦게 잠에드니 숙면을 취하지 못해 일어나도 늘 머리가 개운하지 않았고..
게다가 최근 한 달은 둘째가 축농증으로 인해 자다 토할 정도로 발작성 기침을 해대어 밤잠 설치기 일쑤였고
그런 저런 이유로 새벽기상이 늘 들쭉날쭉이었다.

새벽에 글을 써 놓아야 내 하루를 마음의 부담 없이 자유롭게 쓸 것 같은데
과연 이렇게 불면증이 지속되고 숙면을 취하지 못한 상태로 새벽에 글을 쓸 수 있을지, 이 루틴이 지속가능할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래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현재로서 노력할 수 있는 일은  
일찍 취침하는 것과 새벽에 피곤하더라도 무조건 일찍 일어나 있는 것. 그리고 최대한 커피를 줄여보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어제  아이들 잘 준비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었다가 오늘 이 긴 서사의 시작이었는데..

새벽 1시에 말똥말똥한 눈으로 시간을 확인했으니 어찌 내 마음에 짜증이 안 날 수가 있었겠는가..

5시 알람 맞춰 일어나 화장실에 앉아 잠을 못 자 띵한 머리를 붙잡고 약해진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잠시 생각을 했다.

마음은 다시 자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고 글도 못쓸 거 같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못하더라도 일어나 있자고...
이것이 불면증 치료의 시작이라고..

그렇게 앉아 정신을 차리고 카페인 없는 루이보스티 한잔 내려 한 모금 하니 따스한 기운에 정신이 좀 차려진다.

안개 낀듯한 정신으로 시작하는 오늘 아침과 글쓰기였지만..
그래도 복잡다단한 감정 덕이었던 건지
오늘 아침 온통 내 머리와 마음을 감싸는 기분과  생각에 온전히 집중하여 써내려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은 참 잘했는데...
오늘밤은 제발 잠을 잘 자길...
그래서 내일부터 이 새벽 글쓰기가 편안한 아침 루틴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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